지난 글들에서는 열심히 다른 친구들의 잘못된 점을 회고했었다.

오늘은 국비에서의 최종 팀 프로젝트 팀플, 국비에서의 나의 잘못을 돌이켜본다.

 

 일단 가장 큰 잘못은 전공자 시절에 코딩테스트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서 취업을 못해서 이런 국비를 가야 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싸피나 우테코에 갔다면, 적어도 이런 고통과 시련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기대하지 않았는가 한다. 나는 앞에서도 몇 번을 언급했지만, 전공자이고,  IT학원의 시스템을 어느 정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비전공자들에게 전공자로서 어떤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그 현실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국비 초기에 이 어린 아기 새들은 구구단조차도 코딩하지 못하는 초심자들이었다.

단시간에 그들이 나와 비슷한 시선에서 국비를 바라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매우 큰 착각이었다. 적어도 나는 수년간 이 분야를 공부하면서 이 분야를 바라보는 관점과 통찰력이 이 친구들과는 레벨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공부법에서도 그렇고, 내가 알고 있는 IT안에서의 세부 분야들, 내가 가지는 IT취미들만 해도 그들이 내가 이해하는 IT라는 분야라는 관점은 많이 다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오만해서가 아니라, 투자한 시간 자체가 상당히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정말로 내가 다짐한 것 그 이상으로 이 친구들은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이 친구들은 단시간에 많은 성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당연한 결과였다. 내 생각과 달리 이 친구들에게 어떤 기대심리를 조금은 가졌고, 이것은 나의 잘못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친절하지 못했다.

 물론, 24시간 대기하면서, 언제든 질문하라고 했었다. 전화번호도 공개하며, 어떤 팀이든 국비의 모든 사람에게 나를 오픈했다. 그런데 정작 그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나, 전화는 한 통도 없다. 국비가 끝난 지금도 그렇다.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항상 나다. 이 현상은 사실 이해할 수 없다. 보통은 무언가 얻고자 하는 사람이 좀 더 잘 아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해지고 싶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나의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팀원들에게만큼은 좀 더 관대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전 글에서 많이 아는 자의 정보를 남에게 베푸는 게 절대 당연하지 않다고 얘기했었다. 왜냐하면, 나도 이 분야를 알아 오면서 인고의 세월 동안 인내하며, 공부해 온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좋은 정보들을 아무런 이득이 없이 그냥 알려주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무엇보다도 나를 대하는 팀원들의 태도가 싫었다. 그들이 나에게서 알고 싶다면, 그들이 나에게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날 힘들게 알아 오고, 공부해 왔던 나도 나지만, 적어도 팀원들에게만큼은 관대하게 내가 나서서 찾아가서 알려줄 수도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의 올책이 적 시절을 떠올려보면, 누군가에게 질문이 하고 싶어도,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실력이 있고, 질문할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민폐는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차마 질문하지 못하는 생각도 가졌던 적이 있던 것 같다. 가령, 내년에 결혼하는 우리 매형은 인공지능 7년 차다. 그런데 혹여나 일하는게 바쁠까봐 질문하지 않는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청년이다. 뭐든 질문이 하고 싶지만,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매형이 매일 회사에서 팀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을 텐데, 내가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쓸데없는 질문들을 많이 한다면, 그것대로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도 대략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 잘못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팀이 있고,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프로젝트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팀장과 리더에게 언제든 질문하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팀장과 리더가 질문이 귀찮다고 욕하면, 그건 잘못된 팀장과 리더이다. 당신들이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모르는 걸 알려고 하지 않으면 그게 바로 죄다. 망설이지 말자.

 

화법의 중요성

 나는 목소리가 크고, 말하다 보면 흥분하는 스타일이다. 이건 정말 내가 진정으로 고쳐야 할 점이다. 말하다 보면 내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알아차리고 화내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한면, 이미 늦었다.상대방이 이미 내가 화가 나서 상처받는 순간들이면, 어김없이 나에게 흥분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팀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부끄러웠다.  아...물론, 나는 신나서 과하게 흥분하는 화법도 있다. 이것도 조금 고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요즘 이 책을 읽어보고 있다. 자신의 단점을 제대로 알고, 극복해 보자. 누군가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면, 울컥하지 말고, 상대방의 얘기를 귀담아듣고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 아... 그리고 만약 상대방의 단점을 보았을 때, 팀원들 앞에서 리더에게 말하는 것 보다는 따로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팀원이 상사에게 팀원들 앞에서 훈계하는 그런 회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그 팀원에게 화를 내는 이유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말을 조곤조곤 말하는 연습도 할 필요가 있다. 리더란 팀장이었던 내 파트너처럼 인상 좋고 따끔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나처럼 팀원에게 꾸짖을 줄 알아야 한다. 다만, 그 화법에 대한 연구는 좀 더 해보아야 할 문제다. 아... 참고로 여기까지 읽고 너의 화법 때문에 질문이 없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게 아니다... 애초에 질문조차 없었고, 이런 화법은 대부분 팀이 너무 참여도가 낮다고 생각되거나, 갑갑한 마음에 나오는 화법이었다. 내가 내 약점을 말하고 있다고 해서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었다면, 당신도 그 점을 고쳐야 한다.

 

갈등의 문제

 이전 글에서 팀 내의 갈등에 대해서 많이 다룬 것 같다. 모든 갈등의 문제는 리더에게서 시작되지는 않지만, 명령을 내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때로는 묵직해 할 때가 있다. 팀원들의 지방방송에 휘말려서 제대로 결정을 못 내렸다는 건 그 사람의 지도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팀의 의사는 존중하되 때로는 리더는 팀의 미래를 위해서 좀 더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해야 한다. 팀원들이 이게 좋지 않냐, 저게 맞냐 따져도, 결국은 누군가 강력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문제가 발생하거나, 또 다른 갈등을 가져올 수 있다.

 

싫은 것은 확실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

 이전 글에서 나는 내 외모에 대한 희화화가 있었다고 했다. 나는 싫은 티를 많이 냈지만, 국비가 끝나는 날까지 그 이모티콘은 계속 쓰였다. 이건 사실 팀원들이 주의해야 할 문제이고, 나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내가 강력하게 '그렇게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나의 문제일 수 있다. 물론, 어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사회적으로는 통상적으로 가해자의 잘못을 얘기한다. 다만, 피해자가 그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점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무언가 장난으로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꼰대 같고, 보수적일 거라는 시선 때문에 참아 왔지만, 결국은 그건 나의 스트레스로 직결될 수 있다. 꼰대로 보이고, 보수적으로 보이는 것은 중요치 않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말하는 건 나의 권리다. 내 외모가 비하당하는 것을 허용하는 건 굉장히 괘씸한 일이기 때문에, 내가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앞에서 말한 꼰대, 보수적이라는 단어들을 묵살하고 남을 나의 권리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한다. 팀플을 할 때에 쓸데없이 상대방의 외모를 지적한다든지. 상대방의 성격으로 별명을 만든다든지. 상대방이 갤럭시를 쓰던, 아이폰을 쓰던, 그런 게 왜 중요한가? 팀플을 하는 데 있어서 쓸데없는 논제를 얘기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팀플이 끝나는 시간에 팀플 외적으로 가벼운 대화들, 상대방과의 선 넘지 않는 대화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이 모든 것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ps. 이러한 나의 잘못에 대한 회고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경향이 있다. 다만, 여기서는 명백히 내 잘못보다는 다른 이들의 잘못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잘못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식의 기록은 진정 내가 고쳐야 할 점을 찾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과연 그 누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깊이 회고하고 바꾸려고 할까? 나는 이 과정을 꿈이 생기고부터 꾸준히 실천해 나가고 있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매일 하나씩, 하나씩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 Recent posts